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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로 세상을 지배하는 마법사4화

코드로 세상을 지배하는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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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디버그 모드 온

별관측탑의 가장 깊은 지하 7층은 서늘한 냉기가 감돌았다.

수백 년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석제 회랑 끝에는 붉은 납작돌로 봉인된 육중한 철문이 버티고 있었다. 문살 틈새로 불길한 붉은빛이 새어 나왔다. 불빛은 일정하지 않고 불규칙하게 맥박치며 허공에 날카로운 파열음을 흩뿌렸다.

“대마법사님, 이곳은 안 됩니다.”

등불을 든 레온이 사색이 되어 엘리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 방은 200년 전 대마법사 셋이 함께 소환 의식을 치르다 마력 역류로 폐인이 된 금기 구역입니다. 봉인실 안의 마법진은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영혼을 갉아먹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마력 역류라는 게 이상하지 않나?”

엘리언은 붕대를 감은 손으로 철문의 봉인석을 매만졌다. 낮에 겪었던 화염구 반복 실험의 여파로 손등이 여전히 욱신거렸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정상적인 마법진이라면 시전자가 쓰러진 순간 작동을 멈춰야 한다. 하지만 이 안에 있는 녀석은 200년 동안 꺼지지 않고 주변의 마나를 계속 갉아먹고 있어.”

“그, 그러니까 더 위험한 것 아닙니까!”

“마나를 계속 먹는다는 건 주문이 아직 실행 중이라는 뜻이다. 종료되지 못한 채 멈춰 서 있는 거지.”

엘리언은 낮에 하늘의 검은 균열 너머에서 떨어진 외부 코드의 흔적을 떠올렸다. 완성되지 않은 고리, 비정상적인 초기화 명령, 그리고 알 수 없는 권한의 벽. 탑 하층에서 흘러나오는 기형적인 파동은 그 외부 오류와 본질적으로 같은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철문을 열어라.”

“하지만 탑주님의 허가도 없이…….”

“내가 곧 탑의 최고 권한자다.”

엘리언이 마력을 흘려보내자 철문에 덧대어진 고대 룬 결계가 스르륵 풀려나갔다. 둔중한 마찰음과 함께 문이 열리자 썩은 유황 냄새와 차가운 마력의 잔해가 폭풍처럼 뿜어져 나왔다.

방 한가운데에는 핏빛으로 물든 거대한 원형 소환진이 새겨져 있었다.

마법진의 외곽선은 완성되어 있었지만 중심부의 룬 문자들이 붉은 불꽃을 뿜으며 제자리에서 미친 듯이 진동했다. 마치 톱니바퀴 사이에 돌멩이가 끼어 헛돌고 있는 기계처럼 불안정한 굉음이 지하 공간을 울렸다.

[Error: Unresolved reference]

엘리언의 망막 위로 반투명한 붉은 팝업창이 찰나의 순간 명멸했다.

단순한 감각이 아니었다. 낮 동안 경험했던 코드 시각화가 한 단계 더 깊은 영역으로 진입하려 하고 있었다.

엘리언은 심호흡을 하며 마력을 양쪽 눈가로 집중시켰다. 단순한 투시가 아니었다. 세상의 표면 아래에 숨겨진 구조식을 낱낱이 뜯어보는 시각, 즉 전생의 개발실에서 숱하게 켜두었던 '디버그 모드(Debug Mode)'를 의식적으로 불러냈다.

지하 봉인실의 풍경이 순식간에 탈바꿈했다.

신비롭고 복잡해 보이던 고대 마법 룬들이 색색의 글자와 기호로 치환되었다. 푸른색의 함수 호출부, 노란색의 변수 선언, 초록색의 주석문이 공중에 선명한 텍스트로 정렬되었다.

그리고 소환진의 심장부에 떠오른 단 한 줄의 핵심 호출문이 엘리언의 시선을 강탈했다.

summon(Entity.Demno, tribute_cost);

엘리언은 제 눈을 의심했다.

눈을 깜빡이고 다시 보아도 글자는 바뀌지 않았다.

“……Demno?”

엘리언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의 뒤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방어 결계를 펼치던 레온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뭐라고 하셨습니까?”

“철자가 틀렸다.”

“예? 철자라니요? 저건 고대 악마의 진명(眞名)을 담은 암흑 룬입니다!”

“암흑 룬이 아니라 그냥 오탈자다.”

엘리언은 이마를 짚었다.

이 웅장하고 위험천만한 9서클급 고대 소환진이 200년 동안 폭주하며 세 명의 대마법사를 파멸로 몰고 간 이유가 고작 오탈자 하나 때문이었다.

시스템은 'Demon(악마)' 클래스를 호출하려 했으나 개발자가 문자를 잘못 쳐서 'Demno'라는 존재하지 않는 식별자를 입력해 버린 것이다.

대상을 찾을 수 없으니 시스템은 끝없이 예외(Exception)를 던지며 대기 상태에 빠졌고 그 과정에서 주변 마나를 밑 빠진 독처럼 들이붓고 있었던 것이다.

“대마법사님, 진이 점점 더 붉어집니다! 마력이 임계점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레온의 다급한 비명처럼 소환진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200년간 누적된 메모리 누수가 마침내 물리적 파괴로 번지려는 순간이었다.

지금 바로잡지 않으면 봉인실 전체가 붕괴한다.

엘리언은 손가락 끝에 은빛 마력선을 뽑아 올렸다. 손등의 상처가 불타는 듯 뜨거워졌지만 망설이지 않고 소환진의 호출부로 마력선을 찔러 넣었다.

지직!

붉은 스파크가 튀며 허공에 에러 콘솔이 열렸다.

[Syntax Error: 'Entity.Demno' does not exist in namespace 'Abyss']
[Exception in thread "SummonRoutine": NullPointerException]

엘리언은 마력선을 키보드의 커서처럼 조작했다. 뒤바뀐 글자 'n'과 'o'의 위치를 정확히 붙잡았다.

‘바꾼다.’

그는 은빛 마력을 밀어 넣어 글자의 배열을 재배치했다.

summon(Entity.Demon, tribute_cost);

단 한 글자의 수정.

그 순간 귀를 찢을 듯 울리던 파열음이 거짓말처럼 뚝 멎었다. 불안정하게 진동하던 붉은 불꽃이 일제히 정돈되며 칠흑 같은 암흑 마력으로 색을 바꾸었다.

“어……? 소음이 멈췄습니다?”

레온이 멍하니 눈을 떴다.

하지만 위기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오류가 해결되자마자 멈춰 있던 소환 프로세스가 맹렬한 속도로 재개되었다.

소환진 중앙의 공간이 타원형으로 찢어지며 심연의 차원문이 열렸다. 그리고 마법진의 두 번째 인자가 붉은빛으로 타올랐다.

tribute_cost = caster.soul_energy;

시전자의 영혼 에너지를 대가로 지불하라는 지옥의 계약 명령이었다.

차원문 너머에서 거대한 마수의 팔이 뻗어 나오며 엘리언의 마력 코어를 향해 보이지 않는 갈고리를 던졌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시전자를 통째로 집어삼키는 강제 집행 루틴이었다.

“대마법사님, 물러서십시오! 악마가 영혼을 요구합니다!”

레온이 지팡이를 쥐고 앞으로 뛰어나오려 했다.

“가만히 있어!”

엘리언은 뒤로 물러서는 대신 디버그 창의 변수 탭을 띄웠다.

그의 눈에 소환 프로세스의 구조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본래 정상적인 소환술이라면 소환진이 열리기 전 제물 지불 계약이 먼저 성립되어야 했다.

하지만 이 마법진은 200년 동안 첫 번째 줄의 오탈자 때문에 멈춰 있었다. 계약 함수는 이미 타임아웃(Timeout)으로 연결이 끊긴 채 허공에 붕 떠 있는 상태였다.

즉, 계약 루틴의 유효성 검사가 완전히 무력화되어 있었다.

엘리언은 냉소를 머금으며 제물 변수의 값을 조작했다.

tribute_cost = 0;
contract.owner = user.Elian;
contract.type = Absolute_Master;

지불할 대가는 0. 소유권은 엘리언. 계약 형태는 절대적 주종 관계.

콰아아앙!

소환진 한가운데에서 지옥의 업화가 치솟았다. 칠흑 같은 흑요석 피부와 거대한 가죽 날개를 지닌 그림자 가고일이 붉은 눈을 번뜩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키가 3미터를 훌쩍 넘는 마수는 등장하자마자 대지를 뒤흔드는 포효를 내질렀다.

“크롸아아아악! 감히 어떤 필멸자가 이 몸을 불렀느냐! 네놈의 심장과 피를……!”

가고일은 눈앞에 선 은발의 마법사를 발견하고 날카로운 발톱을 치켜세웠다. 맹렬한 속도로 내리꽂히는 일격에 레온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발톱은 엘리언의 코앞 1인치에서 딱 멈추어 섰다.

가고일의 몸 전체에 보이지 않는 푸른 사슬이 벼락처럼 얽혀들었다.

[System: Absolute Master-Servant Contract Executed]
[Tribute Paid: 0 / Authority: Root Overridden]

“크윽……? 끄으으윽……?!”

가고일의 붉은 눈동자에 극심한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릎이 꺾이고 고개가 바닥으로 처박혔다. 영혼 깊숙한 곳에 새겨진 마스터 등록 코드가 뇌신경을 강제로 장악하고 있었다.

쿵!

거대한 마수가 엘리언의 발치에 이마를 대고 엎드렸다.

“주…… 주인님……?”

가고일의 입에서 굴욕과 복종이 뒤섞인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봉인실 안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레온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바닥에 엎드린 고위 마수와 태연히 옷깃을 터는 엘리언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서, 성공하신 겁니까?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고위 암흑 마수를 굴복시키셨다고요?”

“굴복시킨 게 아니다. 시스템의 기본 설정값으로 등록한 것뿐이지.”

엘리언은 무릎 꿇은 가고일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그의 디버그 시야 속에서 가고일의 상태창이 푸른 글자로 흘러내렸다.

[Name: Shadow Gargoyle]
[Status: Bound (No Cost)]
[Origin Node: Imperial_Network_Sector_04]

엘리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사역마의 데이터 말단에 낯선 주소 식별자가 붙어 있었다. 심연의 지옥에서 불러낸 존재의 근원 데이터가 제국령 수도의 특정 네트워크 구역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 세계의 마수와 소환진조차 중앙 서버의 관리망 아래에 있다는 뜻인가.’

엘리언은 가고일의 몸체 데이터를 압축하여 자신의 그림자 속으로 수납했다. 거대한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가고일이 감쪽같이 빨려 들어갔다.

“가자, 레온.”

“예? 어, 어디로 가십니까?”

엘리언은 붕대 감긴 손을 쥐었다 펴며 봉인실 문을 나섰다.

“고장 난 문장 하나를 고쳤을 뿐인데 대가가 따라왔다. 그렇다면 쓸데없이 마력을 낭비하는 찌꺼기 코드들도 전부 다이어트를 시켜야겠지.”

그의 시선은 이미 탑 너머 더 거대한 세계의 코드를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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