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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 전이자는 다시 산다19화

밑바닥 전이자는 다시 산다

밑바닥 전이자는 다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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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빚의 올가미

수로 위쪽에서 내려오는 쇠막대 소리는 점점 빨라졌다.

돌계단을 긁으며 내려오는 소리였다. 르네는 반쪽 빵을 입에 물고 서준의 팔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토반은 이미 천막 뒤로 몸을 숨긴 채 판자 위의 찌꺼기를 물가로 밀어 넣고 있었다.

서준은 손바닥 안의 동전 두 닢을 꽉 쥐었다. 차가운 쇠의 감촉이 손바닥 살을 파고들었다.

방금 전까지 목구멍을 채우던 딱딱한 빵의 맛이 입안에 남아 있었다. 자신이 찾아낸 고정편의 대가로 얻은 동전이었다. 누군가의 동정을 사서 얻은 것도 아니고 매질을 피하려 억지로 받아 든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 작은 동전 두 닢이 안전을 보장해 주지는 않았다.

"이쪽이다."

르네가 턱짓으로 가리킨 곳은 수로 옆으로 길게 뚫린 배수 통로였다. 오물이 말라붙은 아치형 구멍 너머로 희미한 바깥바람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서준은 몸을 숙여 아치 아래로 들어갔다.

머리 위 천장에서 축축한 물방울이 떨어져 목덜미를 적셨다. 목덜미의 푸른 표식이 물방울에 닿자마자 바늘로 찌르는 듯한 열감을 뿜어냈다.

옷 안쪽에 쑤셔 넣은 고정편의 기호 조각과 세리아의 종이가 서로 맞닿아 있었다. 그것들이 몸에 닿아 있는 한 목의 표식은 가라앉지 않을 것 같았다.

통로 출구가 눈앞에 보였다.

베르단 하층의 건물들 사이로 뻗은 좁고 어두운 샛길이었다. 젖은 돌벽 사이로 새벽 안개가 걷히고 탁한 아침 햇살이 비쳐 들고 있었다.

르네가 출구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려던 순간이었다.

그림자 하나가 통로 입구를 완전히 가로막았다.

서준은 반사적으로 발을 멈췄다. 르네의 손이 즉시 그의 가슴팍을 막아섰다.

통로 입구에 서 있는 남자는 하역장의 거친 작업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먼지 묻은 갈색 덧옷을 단정하게 걸치고 있었고 한 손에는 끈으로 묶은 두꺼운 가죽 장부를 들고 있었다.

남자의 덧옷 깃에는 둥근 금속 단추가 달려 있었다.

마르코의 외투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기호였다.

서준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남자는 통로 안쪽을 내려다보더니 서준의 목에 걸린 임시 나무패를 훑었다. 그의 입꼬리가 비스듬하게 올라갔다.

"한서준."

낯익은 세 음절이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서준의 턱이 굳었다.

마르코가 장부에 적었던 발음 그대로였다. 남자는 서준의 손에 쥐인 동전 두 닢을 빤히 쳐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말소리는 낮고 또렷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그 어조에 담긴 의미는 너무나 분명했다.

도망친 짐승을 찾아낸 사냥꾼의 목소리였다.

르네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그녀는 허리춤의 가죽 칼집을 누른 채 남자를 향해 짧게 쏘아붙였다.

남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는 들고 있던 두꺼운 장부를 펴더니 안쪽에서 누렇게 바랜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종이 위쪽에는 붉은 인주로 찍힌 손바닥 자국이 선명했다.

서준이 마르코의 방에서 찍었던 손도장이었다.

남자는 그 손도장을 가리키고 서준의 손바닥을 번갈아 가리켰다. 이어 종이 아래쪽에 적힌 검은 글씨들을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통행료, 숙소비, 아침 빵값.

그것들이 적혀 있을 자리였다. 하지만 남자의 손가락은 그 선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종이 맨 아래에 새로 덧붙여진 붉은 줄들을 길게 그어 내렸다.

남자는 손가락 열 개를 다 펴고도 모자라 장부 모서리를 세 번 두드렸다.

동전 수십 닢에 달하는 계산이었다.

서준의 눈이 커졌다.

자신은 마르코에게 넘겨져 하역장으로 끌려갔다. 빚을 갚기 위해 지하에서 돌과 쇳가루를 나르며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런데 남자는 하역장으로 넘어간 일 따위는 장부에 없다는 듯 새로운 빚을 요구하고 있었다.

계약장을 무단으로 이탈한 위약금.

상단의 허가 없이 길드에 이름을 올린 대가.

그리고 토반에게 넘긴 마력 고정편의 손해 배상금.

남자의 손짓과 표정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피가 거꾸로 솟구쳤다.

서준은 이를 악물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치밀어 올랐다.

지구에서부터 도망쳐 온 삶이었다. 무기력하게 방 안에 틀어박혀 가족의 질책을 피했고 사고가 나던 순간에도 어머니의 전화를 외면했다. 이곳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마르코의 친절에 속아 아무것도 모른 채 손도장을 찍었고 하역장 바닥을 기어 다니며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

하지만 이 돈은 달랐다.

손에 쥔 동전 두 닢은 그가 오판의 공포를 견뎌내며 찾아낸 진짜 결과물이었다.

그런데 또다시 알지도 못하는 종이를 들이밀며 모든 것을 앗아가려 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서준의 입에서 한국어가 터져 나왔다.

남자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는 비웃듯 혀를 차며 품속에서 작은 종이 한 장을 더 꺼냈다.

손바닥만 한 붉은 종이였다.

종이 표면에는 끈적거리는 검붉은 액체가 얇게 발려 있었다. 가장자리에는 길드의 문양과 상단의 둥근 기호가 겹쳐 찍혀 있었다.

남자는 그 붉은 종이를 서준의 얼굴 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서준의 손바닥을 가져다 대라는 손짓이었다.

이 종이에 손을 대면 길드에 공식적인 채무자로 등록된다는 뜻이었다. 임시 등록패가 걸린 목덜미의 표식과 결합하여 길드의 경비병조차 손을 댈 수 없는 합법적인 노예로 묶이는 서식이었다.

남자는 서준이 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공포에 질려 종이를 밀치거나 쳐내려 할 때 손이 닿기만 해도 각인이 이루어지도록 끈적한 인주를 발라 둔 상태였다.

서준은 그 사실을 몰랐다.

그의 눈에는 그저 자신을 다시 지하로 끌고 가려는 저주스러운 계약서로만 보였다.

"치워!"

서준은 맹목적인 분노에 휩싸여 손을 뻗었다.

종이를 찢어 발기거나 남자의 멱살을 잡으려던 즉흥적인 충동이었다. 손가락이 붉은 종이의 끈적한 표면으로 곧장 뻗어나갔다.

하수인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번졌다.

손끝이 종이에 닿기 직전이었다.

옆에서 날아온 억센 손이 서준의 멱살을 잡아채 바닥으로 메쳤다.

콰당!

서준의 등이 축축한 배수구 벽에 부딪혔다. 눈앞이 번쩍이며 숨이 턱 막혔다.

"멍청한 놈!"

르네가 사납게 짓씹으며 서준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의 발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르네는 통로 바닥에 굴러다니던 젖은 오물 자루를 걷어찼다.

자루가 터지며 썩은 찌꺼기와 검은 물이 하수인의 가죽 장화와 갈색 덧옷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크악!"

하수인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손에 들고 있던 붉은 종이가 바닥의 오물 위로 떨어졌다. 종이에 닿은 검은 물이 부글거리며 붉은빛을 뿜어냈다.

그제야 서준은 바닥에서 피어오르는 섬뜩한 연기를 보았다.

단순한 종이가 아니었다. 살갗이 닿는 순간 마력을 빨아들여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새기는 계약의 덫이었다.

만약 손을 뻗어 그 종이를 밀쳐냈다면 손바닥 전체에 채무 각인이 새겨졌을 터였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분노에 눈이 멀어 손을 내밀었던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파멸의 문턱에 서 있었는지 깨닫는 순간 온몸의 피가 식는 것 같았다.

하수인은 옷에 묻은 오물을 털어내며 흉포한 눈으로 둘을 노려보았다.

그는 허리 뒤편에서 날카로운 쇠송곳을 꺼내 들려 했다. 하지만 통로 바깥 샛길에서 순찰을 도는 길드 경비병들의 호각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하수인의 손이 멈췄다.

길드 공식 등록 구역 근처에서는 사설 브로커가 대놓고 무력을 써서 사람을 납치할 수 없었다. 그들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오직 조작된 계약서와 채무 규정뿐이었다.

하수인은 이를 갈며 품에서 붉은 분필을 꺼냈다.

그는 통로 입구의 돌벽에 거칠게 붉은 빗금 세 개를 그었다.

이어 서준의 목에 걸린 임시 패 번호를 손가락으로 가리킨 뒤 길드 본관 쪽의 거대한 시계탑을 향해 손을 뻗었다.

세 번째 종.

남자는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세 번째 종이 울리기 전까지 이 장부에 적힌 금액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길드에 정식으로 절도와 계약 파기범으로 고발하겠다는 통보였다.

길드에 고발당하는 순간 서준의 목에 걸린 감시 표식이 푸른 불꽃을 뿜으며 경비병들을 불러 모을 것이다.

하수인은 오물이 묻은 덧옷을 거칠게 털어내며 샛길 저편으로 사라졌다.

통로 안에는 무거운 정적만이 남았다.

서준은 벽에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손안에 쥔 동전 두 닢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르네가 돌아섰다.

그녀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저 종이에 손을 댔으면 네 목덜미 표식이 바로 터졌을 거다."

서준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무지와 충동이 또다시 모든 것을 망칠 뻔했다. 배신자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에 눈이 멀어 눈앞의 함정을 보지 못했다.

하역장에서도 그랬고 마르코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상대가 파놓은 규칙을 이해하지 못한 채 감정대로 날뛰는 것은 자살이나 다름없었다.

서준은 떨리는 손으로 옷 안쪽을 더듬었다.

세리아가 준 기록 조각과 토반이 남겨둔 마력 고정편의 기호 조각이 손끝에 닿았다.

그리고 벽에 그어진 붉은 빗금 세 개.

유예 시간은 세 번째 종이 울릴 때까지였다.

서준은 손바닥을 주먹 쥐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더 이상 무기력하게 도망치지도 충동적으로 분노를 터뜨리지도 않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저들이 놓은 덫의 규칙을 이용해야 했다.

저 멀리 길드 시계탑의 거대한 추가 묵직한 소리를 내며 다음 시간을 향해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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