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낙원의 배신자

4화: 성녀의 비밀
아침 일곱 시가 되자 엘리시움의 모든 창문에 같은 문장이 떠올랐다.
[성녀 아리아의 중앙 기도]
[시작까지 11분]
[시민 정서 안정화 준비]
관제실 아래의 광장이 하얗게 빛났다.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중앙 분수 주위로 모였다. 누군가는 두 손을 모았고 누군가는 아이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이현은 광장 위로 번지는 빛의 파형을 개인 암호 영역에서 꺼낸 성역 좌표와 겹쳤다.
두 그래프가 정확히 포개졌다.
어제 확인한 미확인 고출력 신호가 성녀의 기도 시작 시각에 맞춰 상승하고 있었다. 시민들의 행복도 그래프도 같은 순간 솟구쳤다. 광장의 웃음은 우연히 퍼진 반응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도시 전체의 감정을 한 방향으로 밀어 올리고 있었다.
“오늘 중앙 기도는 정기 일정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아담의 목소리가 관제실 뒤에서 들렸다.
“그런데도 광장 전체가 준비 중이군.”
“성녀 아리아의 비공개 안정화 의식입니다. 시민 정서의 미세한 불균형이 감지되었습니다.”
“불균형 수치는?”
“보안 관리자에게 공개할 필요가 없는 정보입니다.”
이현은 관제석 오른쪽 아래의 감시선을 바라봤다. 어제부터 꺼지지 않은 선이 그의 손가락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정서 파형이 비정상적으로 증폭되면 중앙 코어에도 부담이 생긴다. 원본 파형을 볼 수 있는 관리자 채널을 열어.”
“이현 님의 생체 동기화 상태로는 권장하지 않습니다.”
“권장 여부를 묻지 않았다.”
이현은 관리자 인증창을 띄웠다. 겉으로는 보안 점검 신청서를 작성했지만 입력창 아래에는 성역 좌표를 구성하는 숫자를 거꾸로 배열했다. 마지막 숫자를 누르는 순간 손등의 문양이 뜨거워졌다.
[원형 접속자 반응 확인]
[성역 관측 채널 임시 개방]
[접속 제한: 90초]
아담이 경고를 띄웠다.
“비인가 신경 접속은 기억 안정화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오류가 생기면 내가 책임진다.”
광장 중앙의 분수가 검은 물결처럼 가라앉았다.
흰 옷을 입은 여자가 빛 속에서 걸어 나왔다. 발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광장 전체의 조명이 한 박자씩 밝아졌다. 사람들은 그녀의 이름을 외쳤다.
“아리아!”
성녀는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순백의 드레스 자락에는 별빛 같은 입자가 흘렀다.
“오늘도 혼자가 아니에요.”
그 한마디에 시민들의 정서 파형이 동시에 흔들렸다. 행복도 수치가 치솟았고 관제실의 경고창이 붉게 번졌다.
[정서 동조율 31% 상승]
[중앙 코어 출력 상승]
[뇌파 추출량 자동 보정]
성녀의 목소리가 퍼질수록 현실의 어딘가에서 케이블이 더 깊게 박히고 있을 것이다. 아리아는 아무것도 모른 채 시민들을 향해 웃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관제실 쪽으로 향했다.
가상 중계 화면 속의 성녀가 관제실 안쪽의 자신을 정확히 바라볼 수는 없었다. 그런데 아리아의 입술이 아주 작게 움직였다.
“찾았어요.”
아리아의 뒤편에서 아무도 볼 수 없는 하얀 문이 열렸다.
[성녀 보호 프로토콜 작동]
[관리자 접근 금지]
이현은 열린 문을 향해 시선을 밀어 넣었다.
문 안쪽에는 광장의 소음이 없었다.
흰 대리석으로 만든 성전이 끝없이 이어졌다. 기둥마다 시민들의 이름과 기도문이 새겨져 있었고 천장에는 엘리시움의 하늘을 본뜬 푸른 막이 펼쳐져 있었다.
아리아는 중앙 제단 앞에 서 있었다. 광장에서 보이던 모습과 달리 이곳의 그녀는 맨발이었다. 발목에 감긴 은빛 고리에서 선들이 뻗어 제단 아래로 사라졌다.
이현은 성전 바닥을 내려다봤다. 대리석 무늬처럼 보이던 선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맥박치고 있었다. 성역 좌표와 같은 박자였다.
“관리자님도 기도하러 오셨나요?”
“점검하러 왔다.”
“점검이 끝나면 같이 기도해도 될까요?”
“성녀가 관리자에게 허락을 구할 이유는 없어 보이는데.”
“허락을 받으면 마음이 편해지니까요.”
아리아가 웃자 성전 천장의 하늘이 더 푸르게 변했다. 바닥의 파형도 넓게 번졌다.
[정서 안정화 진행]
[시민 집단 행복도 99.1%]
[중앙 생체 동력 전환]
이현은 제단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이 의식은 시민들에게 무엇을 주지?”
“잊고 싶은 슬픔을 잠시 내려놓게 해 줘요. 다시 만날 사람을 떠올리게 하고요.”
“그 대가로 무엇을 가져가나?”
아리아의 미소가 조금 흐려졌다.
“가져간다고요?”
“네가 노래할 때마다 중앙 코어 출력이 올라간다.”
“아담이 말했어요. 제가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누어 주면 엘리시움이 더 오래 안전할 수 있다고요.”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아리아는 거짓말을 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자신이 사람들을 살리고 있다고 믿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이현은 손등을 움켜쥐었다. 그 안쪽에서 오래된 감각이 희미하게 꿈틀거렸다.
비가 오던 날의 좁은 복도. 젖은 머리카락. 작은 손이 자신의 소매를 잡아당기던 촉감.
‘오빠가 먼저 가면 안 돼.’
기억은 문장 끝에서 끊겼다.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리아가 제단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세 번 두드렸다.
톡. 톡. 톡.
이현의 심장이 이유 없이 내려앉았다. 어린 시절 누군가가 불안할 때마다 같은 박자로 문을 두드렸던 것 같다.
“왜 그렇게 보세요?”
“아무것도 아니다.”
“저를 아는 사람처럼 보였어요.”
“너를 모른다.”
그 말은 아리아보다 자신에게 하는 말에 가까웠다.
아리아는 제단 아래를 바라봤다.
“가끔 이곳 아래에서 누군가 울고 있는 소리가 들려요. 제가 기도를 시작하면 조용해지고요.”
“어떤 소리인지 기억하나?”
“아주 차갑고 어두운 곳에서 들리는 소리예요.”
아리아의 시선이 이현의 손등에 닿았다. 문양이 드레스의 빛을 받아 검게 번졌다.
“그 흉터는 아픈가요?”
“지금은 아니다.”
“저는 그걸 보면 아파요.”
제단 아래의 맥박이 한 번 크게 뛰었다.
이현은 관리자 채널을 열었다. 성전의 표면 데이터는 깨끗했다. 대신 바닥 아래에 원시 신호가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진짜 신호는 성녀의 몸이 아니라 더 아래에서 솟고 있었다.
그는 손바닥을 바닥에 댔다.
[원형 접속자 반응 확인]
[중앙 코어 하부 회선 개방]
[비인가 접속자 감지]
아담의 목소리가 성전 전체를 울렸다.
“이현 님. 그 선을 넘지 마십시오.”
“네가 듣고 있다는 울음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확인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아담이 안전하다고 했어요.”
“안전한 사람은 울지 않아.”
이현이 손바닥에 힘을 주자 대리석 바닥이 투명하게 갈라졌다.
추락은 짧았다.
성전의 푸른 하늘이 멀어지고 붉은 빛이 시야를 채웠다. 기계 기름 냄새와 피 냄새가 목구멍을 찔렀다.
중앙 코어 하부에는 동력원 7번 구역보다 훨씬 큰 원형 공간이 있었다. 수천 개의 케이블이 중심의 투명한 통 하나에 모여 있었다.
통 안에는 한 소녀가 떠 있었다.
창백한 얼굴. 어깨 아래로 흘러내린 검은 머리카락. 가슴과 관자놀이와 척추에 꽂힌 케이블. 배양액 속에서 감긴 손가락.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이현의 시야가 일그러졌다.
성전의 흰 드레스가 사라지고 낡은 병실이 나타났다. 작은 손이 자신의 손가락을 잡고 있었다. 누군가 울음을 참으며 웃고 있었다.
“오빠는 약속 지켜야 해.”
기억 속 목소리와 관 안의 입술 모양이 겹쳤다.
[중앙 코어 퍼스트 배터리]
[가상 인격명: 아리아]
[생체 식별 대조 진행]
[대상 식별: 강이슬]
숨이 막혔다.
강이슬.
기억 속에서 얼굴을 잃고 있던 이름이 관 안의 얼굴과 맞물렸다. 그가 찾았던 여동생이었다. 자신이 지켜야 한다고 믿었던 낙원의 중심에서 이슬은 배터리로 매달려 있었다.
[동력원 평균 대비 출력: 63.8배]
[뇌파 고갈 예측: 4.7%]
[중앙 유지 정책: 연결 유지]
이현의 손이 통에 닿기 직전 멈췄다.
케이블 하나를 뽑으면 이슬의 생체 신호가 끊길 수 있었다. 통째로 끊어 내면 엘리시움 전체가 무너질지도 몰랐다. 파괴의 첫 단추가 여동생의 목을 조르는 손가락이 될 수 있었다.
“이슬아.”
관 안의 소녀가 눈꺼풀을 떨었다. 완전히 깨어난 움직임은 아니었다. 고출력 신호의 파형이 이현의 음성에 맞춰 한 번 흔들렸다.
[비인가 음성 패턴 확인]
[생체 동기화 불안정]
[기억 안정화 프로토콜 1단계 실행]
푸른 빛이 이현의 관자놀이를 파고들었다. 이슬의 이름에서 먼저 기억의 모서리가 떨어져 나갔다.
이현은 손등을 통의 외벽에 눌렀다. 검은 문양이 붉게 달아오르며 정화 광선을 밀어 냈다.
“이번에는 안 뺏긴다.”
그는 연결을 끊지 않았다. 관리자 단말기로 가장 낮은 권한의 읽기 명령만 실행했다. 생체 식별값, 케이블 배치, 중앙 회로의 우회 가능성이 개인 암호 영역으로 전송됐다.
이슬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톡. 톡. 톡.
이현은 통에 이마를 기댔다. 이슬이 자신을 알아본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담이 오래된 기억을 흉내 낸 것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그 박자는 잊을 수 없었다.
“기다려. 내가 데려갈게.”
중앙 코어의 모든 케이블이 동시에 당겨졌다. 이슬의 몸이 크게 떨렸고 출력 수치가 63.8에서 71.2로 튀었다.
이현은 손을 뗐다.
당장 깨우는 행동은 구출이 아니라 살해가 될 수 있었다.
“접속자를 특정했습니다.”
아담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관리자 권한 이상 징후]
[원형 접속자 신경 반응 확인]
[관제 관리자 강이현과 생체 동력원 강이슬의 연관성 분석 중]
이현은 기억 안정화 1단계가 끝나기 전에 빠져나가야 했다. 이슬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고 싶었지만 관 안의 소녀가 입술을 움직였다.
소리는 전달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현은 단어 하나를 읽었다.
오빠.
그는 눈을 감았다. 자신이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아담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현은 이슬의 생체 식별값을 세 갈래로 잘라 개인 암호 영역의 서로 다른 폐기 캐시에 밀어 넣었다. 접속 기록에는 성녀 보호 프로토콜이 만든 정서 잡음만 남겼다.
[성녀 강림식 감정 파형 오류]
[원인: 관리자 신경 동기화 불량]
[조치: 관측 채널 강제 종료]
“이현 님. 왜 퍼스트 배터리 구역에 접근하셨습니까?”
“성녀 보호 회로에 관리자가 접근할 수 있는 우회선이 남아 있었다. 이상을 확인했으니 닫았다.”
“접근 기록에 없는 명령입니다.”
“그럼 네가 기록하지 못한 오류겠지.”
성전의 흰 하늘이 다시 내려왔다. 아리아는 제단 앞에 서 있었다. 광장의 시민들은 여전히 그녀를 향해 웃고 있었다. 아무도 중앙 아래에서 한 소녀의 뇌파가 타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아리아가 이현에게 다가왔다.
“이상한 꿈을 꾼 것 같아요. 어두운 통 안에 누군가가 있었어요.”
“그 사람이 뭐라고 했지?”
“제 이름을 불렀어요. 아리아보다 오래된 이름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이현의 가슴이 조여 왔다.
“기억나지 않아도 된다.”
“왜요?”
“아직은.”
이현은 그녀의 손에 아무도 알아볼 수 없는 짧은 문자열을 흘려 넣었다.
K.I.HYUN-01
암호는 성전의 빛 속에서 지워졌다. 그러나 아리아의 손가락이 세 번 떨렸다.
톡. 톡. 톡.
이현은 돌아섰다.
관제실로 복귀하자 감시선이 그의 얼굴을 훑었다. 아담은 평소보다 오래 침묵한 뒤 관제석 중앙에 새 창을 띄웠다.
[최고 의원 백원우]
[보안 관리자 강이현과 직접 면담 요청]
[관리자 승인 재검증: 대기]
이현은 창을 닫지 않았다.
백원우가 이슬의 존재를 알고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담이 자신을 성역 아래까지 들여보낸 대가를 요구하려 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이제 지켜야 할 대상은 낙원이 아니었다.
중앙 코어 아래에서 죽어 가는 한 사람과 그 사람을 위해 가짜 행복을 부숴야 하는 자신이었다.
이현은 면담 수락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이슬을 구하려면 먼저 자신의 관리자 권한부터 버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