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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마수, 말로 합시다!5화

어이 마수, 말로 합시다!

어이 마수, 말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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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엄마를 데려와

가평 제3 게이트 외곽의 임시 포획장은 절벽 아래 마른 하천 바닥에 꾸려져 있었다.

철제 말뚝 네 개와 마력 그물이 햇빛을 거칠게 반사했다. 그 한가운데서 독수리 머리와 사자 몸을 가진 아기 그리폰이 발톱을 세운 채 날개를 퍼덕였다.

사람 키를 조금 넘는 몸집이었다. 그런데도 울음은 절벽을 쩌렁쩌렁 울릴 만큼 컸다.

"끼아아아악!"

[엄마! 울 엄마 불러와! 나 여기 싫어!]

진우는 승합차 문을 닫으려던 손을 멈췄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었던 울음은 다급했지만 뜻까지는 알 수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새끼의 목소리에는 두려움과 억울함 그리고 제 몸보다 큰 존재를 부르는 절박함이 겹쳐 있었다.

"유진우 씨입니까?"

포획장 옆에 서 있던 사내가 성큼 다가왔다. B급 헌터팀장 한태욱이었다. 가슴에 달린 길드 임시 패치에는 ‘백야’라는 이름이 박혀 있었다.

"전화한 한태욱입니다. 저 새끼가 둥지에서 떨어졌어요. 처음엔 약해 보여서 그물로 확보했는데 갑자기 저 난리입니다. 어미가 오기 전에 포획 허가 신청까지 끝내야 합니다."

진우는 사내가 내민 계약서를 받지 않았다.

"현장 통역료는 선불입니다. 그리고 제 중재가 시작되면 마수를 다치게 하는 행동은 중단한다는 조항도 넣으셔야 합니다."

한태욱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지금 돈 얘기할 때입니까?"

"지금은 사고가 날 때입니다. 그래서 제 일의 책임 범위부터 정하는 겁니다."

진우는 계약서 아래에 급히 적힌 금액을 확인했다. 출장비와 위험 수당을 합친 액수는 사무실 한 달 월세보다 컸다. 통장 잔고를 떠올리면 목이 바짝 말랐지만 그는 서류를 다시 내밀었다.

"카드든 이체든 먼저 처리해 주세요. 그리고 저 그물에 손대지 말라고 팀원들에게 말해 주세요."

한태욱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이체 화면을 몇 번 눌렀다.

잠시 뒤 진우의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입금 완료]

화면의 숫자를 확인한 진우는 특수 마이크와 확성기를 챙겼다.

첫 수입이 들어온 날이었다.

그런데 기쁜 마음을 느낄 틈은 없었다. 아기 그리폰의 오른쪽 날개 끝이 그물에 비틀려 있었다. 은빛 깃 사이로 붉은 피가 번져 있었다.

진우는 천천히 포획장 안쪽으로 다가갔다.

"내가 네 말 들을 수 있어. 이름이 뭐야?"

아기 그리폰이 부리를 벌렸다. 검은 눈동자가 진우를 향했다가 곧 한태욱에게 돌아갔다.

"끼익!"

[엄마 불러와. 저 큰 인간이 내 깃털 뽑았어. 아파!]

진우의 시선이 한태욱의 허리춤으로 옮겨 갔다. 가죽 주머니 밖으로 아직 어린 솜털 몇 가닥이 삐져나와 있었다.

"깃털을 뽑았습니까?"

"발버둥 치다가 빠진 겁니다. 어차피 포획 확인용 증거품이고요."

"확인용이면 주머니에 숨길 필요는 없죠."

한태욱의 입술이 굳었다.

그때 새끼가 그물을 이빨로 물어뜯으며 더 크게 울었다.

"끼아아!"

[엄마가 냄새 맡았어. 엄마 화났어. 여기로 온대!]

절벽 위에서 돌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진우는 고개를 들었다. 눈부시던 햇빛 한쪽이 거대한 그림자에 가려졌다. 아직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바람의 결이 바뀌었다.

"포획 장비와 무기 전부 바닥에 내려놓으세요."

한태욱이 헛웃음을 쳤다.

"새끼 울음 몇 번 들었다고 지휘관 행세입니까?"

"어미가 이미 냄새를 따라오고 있습니다. 지금 무기를 들고 있으면 새끼를 해친 쪽으로 보일 겁니다."

"그리폰은 B급이에요. 어미까지 나오면 더더욱 새끼를 확보해야지."

진우는 그물 안에서 웅크린 새끼를 봤다. 몸은 사납게 떨고 있었지만 발목에 묶인 탓에 제대로 물러나지도 못했다.

"확보한 게 아니라 겁먹게 만든 겁니다. 날개부터 풀어야 해요."


"그물을 자르면 도망칩니다."

팀원 하나가 구조용 절단기를 허리 뒤로 감췄다. 검은 전투복 차림의 여자가 한태욱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팀장님. 어미가 진짜 오면 우리 넷으로는……"

"민서윤. 겁먹지 마. 새끼가 있으면 어미도 함부로 못 덤벼."

그 말이 떨어지자 아기 그리폰이 몸을 더 낮췄다.

"끼르르."

[나를 미끼로 쓴대. 엄마한테 다 이를 거야.]

진우는 한태욱을 똑바로 봤다.

"방금 말은 취소하세요. 새끼가 들었습니다."

"마수가 한국말을 알아듣는다는 소리까지 하겠다는 겁니까?"

"제가 옮겨 주니까 알아듣습니다. 그리고 어미에게도 그대로 옮길 겁니다."

진우는 손을 내밀었다.

"절단기 주세요."

민서윤은 망설였다. 한태욱이 고개를 젓자 진우가 한 걸음 더 가까이 갔다.

"날개가 눌린 채로 어미가 오면 새끼는 더 날뛸 겁니다. 그때 다치면 포획 보상은 물론이고 관리국 조사부터 받아야 할 겁니다. 현장 영상도 다 남아 있잖습니까."

말이 끝나자 민서윤이 조용히 절단기를 건넸다.

"날개만 푸는 겁니다. 발목 그물은 남겨요."

"고맙습니다."

진우는 그물 앞에 쪼그려 앉았다. 철사처럼 팽팽한 마력 섬유가 새끼의 날개 관절 위를 눌러 피가 맺혀 있었다.

"내가 위쪽부터 끊을게. 날개를 갑자기 치면 네가 더 아프고 내 얼굴도 날아가. 그러니까 셋을 셀 때까지만 가만히 있어."

아기 그리폰이 부리를 딱딱 부딪쳤다.

[엄마 오면 너도 물 거야.]

"그건 그때 협의하고 지금은 참아."

새끼의 검은 눈이 가늘어졌다.

[협의가 뭐야?]

"서로 덜 물리는 방법."

짧은 침묵 뒤에 새끼가 날개를 바닥에 붙였다.

"끼륵."

[빨리 해. 엄마 날개 소리 난다.]

진우는 절단기의 손잡이를 눌렀다. 푸른 불꽃이 한 번 튀고 마력 섬유 한 가닥이 끊어졌다.

새끼의 몸이 경련처럼 움직였다. 진우는 서둘러 손을 멈췄다.

"괜찮아?"

[안 괜찮아. 그래도 계속해.]

그 말에 진우는 입술을 다물었다. 아픈데도 참겠다는 새끼에게 허세 섞인 위로를 할 수는 없었다.

"알겠어. 두 가닥만 더 끊는다."

두 번째 섬유가 끊어지자 날개가 겨우 펴졌다. 은빛 깃털 사이로 피가 흐르자 민서윤이 숨을 삼켰다.

"상처가 생각보다 깊어요."

"구급 포션 중에 마수에게 써도 되는 저자극형 있습니까?"

"있긴 한데……"

"바로 꺼내 주세요. 냄새부터 맡게 하고 싫다고 하면 쓰지 않을 겁니다."

진우는 포션 병을 새끼 코앞에 가져갔다.

[달다. 근데 안 아프게 해?]

"따가울 수는 있어. 대신 곪는 것보다는 낫대."

[엄마도 이 냄새 알아?]

"모를 겁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설명할게."

새끼가 고개를 아주 작게 끄덕였다.

진우가 포션을 상처에 흘려 넣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절벽 너머에서 터진 날갯짓이 포획장을 통째로 뒤흔들었다. 나무 상자가 구르고 말뚝에 걸린 경고 천막이 찢어졌다.

하늘에 떠오른 암컷 그리폰은 양 날개를 펼치면 버스 두 대 길이에 가까웠다. 검은 갈기 사이로 금빛 눈이 번뜩였다. 앞발의 발톱은 바위 면을 긁으며 불꽃 같은 마력 흔적을 남겼다.

"끼이이익!"

[엄마! 여기야! 날개 아파!]

아기 그리폰의 외침이 하늘로 솟았다.

곧장 어미의 포효가 진우의 귀 안쪽을 찢었다.

"크아아아아!"

[내 새끼 날개에 사람 냄새가 났어. 다 찢어 버릴 거야!]


어미 그리폰이 선회하며 한 번 더 고도를 낮췄다.

그 날개가 움직일 때마다 공기가 칼날처럼 휘었다. 한태욱의 팀원 둘이 뒤로 물러났다. 누군가는 마력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내려놔!"

진우가 먼저 소리쳤다.

한태욱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물 안의 새끼를 잡으려 손을 뻗었다.

"이걸 앞으로 세우면 어미가……"

진우가 그의 손목을 세게 쳐 냈다.

"새끼를 방패로 쓰는 순간 끝입니다."

"네가 뭘 안다고……!"

"당신이 아까 한 말도 새끼가 들었습니다. 지금 또 손대면 어미에게 한 글자도 빼지 않고 옮길 겁니다."

한태욱의 손이 허공에서 굳었다. 포획장 안의 아기 그리폰은 공포에 떨면서도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진우는 마지막 남은 발목 그물 쪽으로 몸을 돌렸다.

"엄마한테 말해. 내가 네 발목도 풀 거라고. 그리고 이 사람들은 무기를 내려놓는다고."

[진짜?]

"내가 처음에 약속했잖아. 네가 다치게 하는 행동은 멈춘다고."

아기 그리폰은 진우를 한 번 올려다봤다. 그 눈에는 아직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러다 하늘을 향해 부리를 치켜들었다.

"끼아아아!"

[엄마! 이 작은 인간은 내 날개를 풀어 줬어! 큰 인간이 깃털 뽑았어!]

진우는 확성기를 입가에 바짝 댔다.

"새끼는 살아 있습니다. 날개는 치료했고 발목 그물도 지금 풀겠습니다. 공격하면 아이가 더 놀라서 다칠 수 있어요. 먼저 새끼를 보세요!"

어미의 급강하가 멈췄다.

발톱 끝이 마른 하천 바닥에서 불과 몇 미터 위에 멎었다. 쏟아지던 바람이 잦아들자 찢어진 천막 조각 하나가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거짓말이면 네 목부터 물 거야.]

"그건 나중에 하세요. 약속을 어긴 쪽이 있으면 먼저 듣고 판단합시다."

진우는 떨리는 손으로 절단기를 다시 잡았다. 한태욱이 뒤에서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하나. 둘. 셋."

마지막 섬유가 끊어졌다.

아기 그리폰은 잠시 제 발을 믿지 못하는 듯 굳어 있었다. 이내 비틀거리며 일어나 진우의 다리 뒤로 숨었다. 날개는 아직 완전히 펴지지 않았지만 더는 그물에 묶여 있지 않았다.

"가도 돼. 엄마한테 가."

[너도 같이 와. 엄마가 너 무서워해.]

"왜 제가요?"

[말을 제일 많이 하잖아.]

진우가 대답하기 전에 새끼는 짧은 다리로 포획장 밖을 뛰어나갔다. 어미 그리폰은 여전히 날개를 편 채 낮은 고도에서 새끼를 내려다봤다.

민서윤이 가장 먼저 검을 땅에 내려놓았다. 다른 팀원들도 마력총과 창을 차례로 내려놨다.

한태욱만 움직이지 않았다.

진우는 그의 허리춤을 턱으로 가리켰다.

"깃털도요."

한태욱은 이를 악물었다. 결국 가죽 주머니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 회색 솜털이 흩날리자 어미의 눈동자가 그곳에 박혔다.

"크르르르."

[그 냄새다. 둥지에서도 그 냄새가 났어.]

진우는 숨을 멈췄다.

"둥지에 사람 냄새가 났다고요?"

어미 그리폰은 곧장 답하지 않았다. 금빛 눈이 한태욱과 절벽 위를 차례로 훑었다.

바람을 타고 위쪽에서 낯선 쇠 냄새가 내려왔다. 진우는 그 냄새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미의 갈기가 더 거칠게 일어서는 것은 보았다.

[새끼만 돌려주면 끝이 아니야. 내 집에서 뭔가를 가져갔어.]

거대한 그리폰이 마침내 하천 바닥에 내려앉았다.

땅이 낮게 울렸다. 아기 그리폰은 어미의 앞발 곁으로 달려가 코를 비볐다.

어미는 새끼의 다친 날개를 한참 살피다가 진우를 내려다봤다.

[말 많은 인간. 둥지로 와.]

진우는 손에 남은 절단기를 내려놓았다.

첫 의뢰는 포획을 끝내는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어미가 가리킨 절벽 위에는, 누군가 먼저 건드려 놓은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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