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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세계에서 생필품을 독점함1화

종말의 세계에서 생필품을 독점함

종말의 세계에서 생필품을 독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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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문밖의 손님

폐점까지 13분 남았다.

서도윤은 계산대 아래에 놓인 정산 태블릿을 두드렸다. 화면에 떠야 할 매출 합계 대신 회색 원만 빙글빙글 돌았다.

“또 끊겼네.”

카드 단말기도 냉장고 온도계도 동시에 먹통이었다. 매장 천장에 달린 형광등 두 개가 번갈아 깜빡였다.

도윤은 태블릿을 내려놓고 유리벽 너머를 바라보았다. 도로 건너편의 가로등이 한 줄씩 꺼지고 있었다. 정전이라면 변전소 방향부터 어두워져야 했다. 그런데 불빛은 매장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듯 사라졌다.

창고 쪽에서 둔탁한 진동이 전해졌다.

쿵.

도윤의 손이 계산대 위에서 멈췄다. 상품이 떨어진 소리는 아니었다. 바닥 아래에서 무거운 쇳덩이가 부딪힌 것에 가까웠다.

그는 매장 안쪽 비상등을 켜고 창고 문을 열었다. 상자 사이로 주차장이 보였다. 주차장 뒤편에는 방금 전까지 없던 검은 틈이 있었다.

틈은 벽에 난 구멍처럼 보이지 않았다. 주차장 바닥에서 솟아오른 검은 직사각형이었다. 안쪽은 빛을 반사하지 않았고 주변의 조명까지 빨아들이고 있었다.

도윤은 창고 손잡이를 놓았다.

그때 도로 쪽에서 비명이 터졌다.

사람 셋이 어둠을 뚫고 달려오고 있었다. 한 명은 팔을 붙잡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뒤를 몇 번이나 돌아보았다. 가장 앞선 여자가 손전등을 흔들며 유리문을 두드렸다.

“문 열어요! 제발!”

도윤은 자동문 앞까지 갔다. 손이 센서 위에서 멈췄다. 매장 문을 열면 저 사람들을 들일 수 있다. 동시에 바깥에 무엇이 따라왔는지도 함께 들어올 수 있었다.

유리문 너머의 여자가 손바닥을 유리에 붙였다. 짧은 머리 아래로 땀이 흘렀고 왼팔 소매가 찢어져 있었다.

“뒤에 뭐가 있습니까?” 도윤이 소리쳤다.

“주차장 쪽은 비었어요. 문 있는 쪽으로는 가지 마요. 거기서 소리가 나요!”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주차장 어둠 속에서 긁는 소리가 났다. 금속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소리였다.

도윤은 셔터 내림 버튼을 보았다. 평소라면 지금쯤 폐점 안내 방송을 틀고 문을 닫았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가 아니었다.

“안쪽 비상 출입구를 열 수 있으면 들어오세요.”

여자가 눈을 크게 떴다.

“열쇠가 있어요?”

“제가 물었습니다.”

도윤은 자동문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당신들이 가진 걸 먼저 말하세요. 빈손이면 문을 못 엽니다.”

뒤에서 남자가 욕설을 내뱉었다. 여자는 그를 돌아보지 않고 허리 가방을 뒤졌다. 손에 낡은 은색 열쇠 하나와 접힌 종이를 꺼냈다.

“창고 보조 열쇠예요. 그리고 이 근처 지리를 압니다. 저 검은 문 주변을 따라 움직이는 게 있어요. 물을 주면 둘 다 드릴게요.”

도윤은 열쇠를 바라보았다. 창고 보조 열쇠라면 바깥에서 비상 출입구를 열 수 있었다. 종이에 적힌 정보가 진짜라면 정문을 피해 사람들을 이동시킬 수도 있었다.

“물 한 병에 열쇠와 정보.”

“네.”

“먼저 열쇠를 바닥에 놓으세요. 종이는 유리 아래로 밀고요.”

여자는 망설이다가 그대로 했다. 도윤은 자동문을 손가락 두 마디만큼 열었다. 여자가 열쇠를 밀어 넣자 도윤은 재빨리 집었다.

“물은 어디 있어요?”

“거래가 끝나면 드립니다.”

“사람이 죽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지금 거래하는 겁니다.”

도윤은 진열대에서 생수 한 병을 꺼냈다. 병을 문틈으로 밀어낸 순간 여자가 낚아챘다. 그녀는 뚜껑을 열지 않고 뒤에 선 남자에게 건넸다.

남자는 물을 보자마자 달려들었다. 여자는 병을 가슴에 안고 팔꿈치로 그를 밀었다.

“수민, 네가 마셔.”

“저 사람 팔에서 피가 나요.”

도윤은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들었다. 윤수민. 수민은 병을 한 모금만 마시고 부상자의 입에 가져갔다.

유리문 밖의 어둠이 흔들렸다.

해나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자가 손전등을 껐다. “지금입니다. 움직임을 줄여요.”

도윤은 문을 닫았다. 수민은 유리벽 가까이 주저앉았고 부상자는 이를 악물었다. 남자는 매장 안쪽 선반을 노려보고 있었다.

주차장 안쪽에서 낮은 울음소리가 번졌다. 검은 문 옆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지나갔다. 네 발로 걷는 짐승처럼 보였지만 몸통의 윤곽이 중간중간 끊겼다.

해나는 문틈으로 도윤을 보았다.

“비상 출입구 위치.”

도윤은 열쇠를 들어 보였다. “밖에서 열 수 있습니까?”

“안쪽에서 잠글 수 있으면요.”

“확인되면 들입니다.”

해나의 눈썹이 올라갔다.

“사람을 들이는 데도 조건이 많군요.”

“조건이 없으면 매장이 아니라 구멍입니다.”

해나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좋아요. 비상 출입구는 왼쪽 벽 뒤입니다. 내가 들어가서 잠그고 다시 열겠습니다. 그동안 문을 닫아 두세요.”

“혼자 들어가겠다고요?”

“당신은 전투 경험이 없어 보입니다.”

도윤은 반박하지 못했다. 해나는 방패처럼 접힌 금속판을 팔에 묶고 있었다. 멀쩡한 무기는 아니었지만 손에 익은 사람의 움직임이었다.

그녀가 주차장 옆 통로로 사라진 뒤 도윤은 문을 닫았다. 수민은 부상자의 팔을 천으로 묶었다. 남자는 마지못해 유리문에서 물러났다.


“물이나 먹을 것 좀 더 줘요.”

도윤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대가가 있습니까?”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 그걸 따집니까?”

“지금이라서 따집니다.”

도윤은 매장 안을 둘러보았다. 생수는 8병, 즉석식은 5개, 건전지는 세 묶음이었다. 카드와 현금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물건 수량을 눈앞에서 줄이면 다시 채울 방법이 없었다.

“물건을 나눠 주면 다음 사람에게도 줘야 합니다. 저는 여기서 버티려면 수량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 목숨보다 병 하나가 중요해요?”

“병 하나를 아무 계산 없이 내놓으면 내일은 아무도 못 마십니다.”

남자가 선반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뒤편 출입구에서 잠금쇠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해나가 들어와 문을 닫았다. 팔에는 얕은 긁힌 자국이 새로 생겨 있었다.

“열쇠는 작동합니다. 바깥쪽 손잡이는 부서졌고 안에서만 잠글 수 있어요.”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민이 건넨 열쇠는 물보다 훨씬 큰 가치였다. 하지만 그 가치를 인정하는 순간부터 자신은 점장이 아니라 거래 상대가 된다.

해나는 매장 정문을 살폈다. “저 사람들까지 안으로 들일 겁니까?”

“이미 한 명은 들였습니다.”

“나머지는?”

“대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밖에 두면 죽을 수도 있어요.”

“안에 들이면 모두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해나는 도윤을 노려보았다. “그럼 판단은 내가 합니다. 저건 사람을 쫓아오는 게 아니라 움직임을 쫓아요. 진열대를 유리벽 쪽으로 밀고 손전등은 한 곳에 모아야 합니다.”

도윤은 잠시 망설이다가 진열대 바퀴를 풀었다. 해나와 함께 과자 진열대를 밀어 유리벽 아래를 막았다. 남자는 마지못해 상자를 옮겼고 수민은 부상자의 팔을 다시 묶었다.

유리벽 밖의 그림자가 가까워졌다.

긁, 긁.

괴수의 앞발이 유리를 스쳤다. 투명한 벽 너머로 검은 살점과 젖은 이빨이 드러났다. 얼굴이 있어야 할 곳에는 가느다란 틈만 있었다.

부상자가 숨을 삼켰다.

괴수의 머리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도윤은 본능적으로 손전등을 켜려다 멈췄다. 해나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캔 하나를 집어 반대편 창고 문으로 던졌다.

캉.

괴수가 소리를 따라 고개를 꺾었다. 검은 몸이 유리벽에서 떨어졌다.

“움직임을 줄이는 게 맞군요.” 도윤이 낮게 말했다.

“맞는 게 아니라 아직 그렇게 보이는 겁니다.” 해나가 답했다. “다음엔 달라질 수 있어요.”

도윤은 그 말을 기억해 두었다. 확신이 아니라 관찰. 이 여자는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지 않았다.


정전이 매장 전체를 삼켰다. 비상등 하나만 붉게 켜졌다. 시계는 11시 59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도윤은 계산대 아래에서 종이와 볼펜을 꺼냈다. 수민이 준 열쇠와 정보, 그 대가로 건 생수 한 병을 적었다. 해나가 그 글씨를 내려다보았다.

“장부까지 씁니까?”

“기억은 바뀝니다. 숫자는 남습니다.”

“누가 확인하죠?”

“당사자들이요.”

수민이 피식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 긴장이 풀리며 새어 나온 숨에 가까웠다.

도윤이 마지막 줄에 점을 찍자 시계 초침이 자정을 넘었다.

눈앞에 흰 글자가 떠올랐다.

[거래가 기록되었습니다.]

도윤은 눈을 비볐다. 글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등록 조건을 확인하는 중입니다.]

“뭡니까?” 해나가 물었다.

“아직 모릅니다.”

도윤이 솔직하게 대답한 순간 매장 안쪽 선반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툭.

생수 한 병이 빈칸에 놓여 있었다. 방금 전까지 없던 상품이었다. 도윤은 그것을 집어 들지 않았다. 라벨도 유통기한도 평소 매대에 있던 것과 같았다.

[오늘의 보충이 완료되었습니다.]

문구는 한 줄뿐이었다. 물이 몇 병인지도 왜 생겼는지도 알려 주지 않았다.

해나가 그를 바라보았다. “방금 저건 어디서 났죠?”

도윤은 선반과 자신의 손을 번갈아 보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주차장 뒤편의 검은 문은 여전히 열려 있었다. 문 안쪽 깊은 곳에서 쇠붙이가 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낮게 말했다.

“라이트코너…… 사람 있습니까?”

도윤은 새로 생긴 생수 한 병을 내려다보았다. 이번에는 대가를 먼저 정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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