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의 위험생물 사육사

1화: 가시여우는 명령을 듣지 않는다
왕립 아스테르 아카데미 제1실기장은 생각보다 좁았다.
한결 로엔은 대리석 바닥에 그어진 노란 선 안에서 우리를 바라보았다. 천장 조명은 지나치게 밝았고 관람석에서는 지원자들의 숨소리와 새 가죽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우리 안에는 가시여우 유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붉은 털 사이로 돋은 가시는 아직 짧았다. 성체라면 손바닥을 꿰뚫을 만큼 자랐겠지만 겁먹은 마수의 발톱은 크기와 상관없이 사람을 다치게 한다.
“마수학과 예비 실기 세 번째 조.”
감독관이 금속판을 두드렸다.
“제한 시간은 오 분이다. 개체의 공격성을 낮추고 운반 상자에 넣어라. 마취침 사용은 허용하지만 상태 기록에 감점이 있다. 우리 밖으로 나오면 즉시 실격이다.”
옆에 선 은발 남자는 허리의 검집을 확인했다. 붉은 갈색 머리의 여학생은 약초 주머니를 열었다.
한결은 우리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가시여우의 귀가 세 번 움직였다. 왼쪽. 천장. 출입문.
꼬리는 몸 아래로 말려 있었지만 꼬리 끝의 가시는 바닥을 긁고 있었다. 앞발은 발톱을 세운 채 뒷걸음질을 반복했다. 공격하려는 자세와 비슷했으나 시선이 사람에게 머물지 않았다.
출구를 찾고 있었다.
한결은 열 걸음 안쪽으로 들어갔다. 귀로 듣는 소리 외에 다른 감각이 겹쳤다. 가시여우의 마핵은 빠르게 뛰고 있었지만 박동은 일정했다. 공포가 먼저 치솟고 그 뒤에 몸이 공격 자세를 흉내 내고 있었다.
우리 바닥의 사료통에서 씁쓸한 냄새가 났다.
말린 고기 냄새 사이에 금속을 핥은 듯한 잔향이 섞여 있었다. 변경 보호소에서 흥분제를 잘못 먹은 마수들에게서 맡았던 냄새와 닮았다. 한결은 정확한 성분을 몰랐지만 좋은 냄새가 아니라는 것은 알았다.
“시작.”
감독관이 손을 내리자 우리 양쪽의 마력등이 동시에 켜졌다.
가시여우가 납작 엎드렸다.
한결은 한 발 물러섰다. 일정하던 마핵의 박동이 두 배로 빨라졌다. 유체는 사람을 향하지 않고 가장 가까운 벽으로 몸을 틀었다.
“개체가 움직입니다!”
누군가 고함쳤다.
가시여우가 철창을 차고 한결 쪽으로 날아왔다. 가시가 조명 아래에서 번뜩였다.
한결은 몸을 낮추며 옆으로 굴렀다. 가시 몇 개가 어깨 옆 바닥에 박혔다.
“뒤로 세 걸음. 모두.”
“지원자가 지시하지 마라.”
“외곽문부터 닫아 주세요. 통로를 비워야 합니다.”
은발 남자가 검자루를 잡았다.
“위험 개체다. 제압하겠습니다.”
“검을 뽑으면 더 튑니다. 지금 저건 저를 보고 있지 않습니다.”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가시여우가 철창을 두 번째로 찼다. 이번에는 더 낮고 빨랐다.
감독관이 마취침 상자를 열었다. 금속 뚜껑이 열리는 소리와 날카로운 약품 냄새가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
가시여우의 귀가 뒤로 접혔다.
“침을 쓰면 안 됩니다.”
“네가 책임질 건가?”
“아직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소리와 냄새가 겹친 뒤에만 사람 쪽으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철창을 두 번 찼다.”
“나갈 곳을 찾은 겁니다.”
한결은 가방을 열었다. 보호소를 떠나기 전 남은 말린 들쥐를 천으로 감싸 넣어 둔 가방이었다. 그는 깨끗한 면천을 꺼내 사료통 앞을 가렸다.
“냄새를 끊습니다.”
“실기 도구 외 사용은 금지다.”
“개인 소지품입니다.”
붉은 갈색 머리의 여학생이 약초 주머니를 닫았다.
“나도 향을 피우지 않을게. 냄새가 너무 많아.”
“고맙습니다. 상자 안쪽의 금속판도 빼 주세요.”
“그건 문 고정 장치야.”
“문을 닫지 않을 겁니다.”
은발 남자가 눈썹을 찌푸렸다.
“운반 상자는 개체를 가두는 물건이다.”
“지금 가두면 부딪힙니다. 열린 채 선택하게 해야 합니다.”
“실기 규정상 제한 시간 안에 넣어야 한다.”
“그래서 시간을 쓰고 있습니다.”
남자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도 검을 뽑지 않았다. 대신 한결의 부탁대로 통로와 관람석 사이를 막아 섰다.
한결은 우리 앞에 몸을 낮췄다. 시선을 정면으로 맞추지 않은 채 들쥐 한 조각을 철창 안으로 굴렸다.
들쥐는 가시여우의 앞발에서 두 뼘 떨어진 곳에 멈췄다.
유체의 코가 떨렸다.
공명 청진이 감각 위로 겹쳐졌다. 짧은 호흡과 빠른 마핵 박동이 느껴졌다. 그러나 앞발이 먹이 쪽으로 움직일 때마다 박동은 아주 조금씩 느려졌다.
먹이를 원한다.
동시에 철창과 사람과 빛을 무서워한다.
한결은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았다. 예전 보호소에서 다친 새끼 늪발톱을 붙잡으려다 물린 적이 있었다. 도망칠 공간을 막아 놓고 다정한 목소리만 내는 것은 다정함이 아니었다. 그때 배운 것은 기다림이었다.
가시여우가 들쥐에 코를 댔다.
감독관이 초조한 듯 발을 굴렀다. 바닥의 금속선이 울리자 유체는 먹이를 내버려 두고 뒤로 뛰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죠?”
“삼 분 십칠 초.”
“아직 충분합니다.”
한결은 상자를 우리 문에서 두 걸음 떨어진 곳에 놓았다. 문은 고정하지 않고 바깥쪽으로 완전히 열었다. 여학생이 금속판을 빼내자 한결은 자신의 면천 한 귀퉁이를 상자 안에 걸쳤다.
보호소의 흙냄새와 햇볕 냄새가 밴 천이었다.
“먹이를 안에 넣으면 더 빨리 들어가지 않겠어?”
“끝까지 넣으면 상자에 들어가야만 먹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들어갈지 말지 고를 수 있어야 합니다.”
한결은 들쥐 조각을 상자 입구 옆에 놓았다. 냄새만 안쪽으로 이어지도록 천을 살짝 당겼다.
가시여우가 우리 구석에서 고개를 들었다. 쓴 냄새는 약해졌고 상자 문은 열려 있었다. 그 사이에서 가장 밝은 조명만 은발 남자의 몸이 가리고 있었다.
“조금만 더 왼쪽으로 서 주세요.”
남자는 말없이 움직였다.
가시여우가 첫 발을 내디뎠다.
한결은 숨을 참았다. 유체는 상자 앞에서 멈췄다. 먹이를 물고도 몸은 상자 반대쪽을 향했다.
한결은 천을 당기지 않았다. 물러날 길을 열어 둔 채 기다렸다.
유체가 한 발을 상자 안에 넣었다.
그때 관람석에서 헛기침이 터졌다.
가시여우의 몸이 굳었다.
은발 남자가 즉시 뒤를 돌아보았다.
“조용히 하십시오.”
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실기장을 눌렀다.
유체는 도망치지 않았다. 한결은 바닥을 손가락으로 두 번 두드렸다. 보호소에서 물그릇을 내려놓을 때 내던 일정한 소리였다.
열둘. 열셋. 열넷.
공명 청진으로 느껴지는 박동이 조금씩 내려갔다.
“좋습니다. 더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결은 마수에게 존댓말을 건넸다. 말의 뜻보다 목소리의 높낮이를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의도였다.
가시여우가 상자 안으로 두 발을 더 넣었다. 뒷발 하나가 아직 우리 바닥에 걸쳐 있었다. 한결은 천을 당기지 않고 멈췄다.
유체는 스스로 몸을 낮춰 상자 안의 천 위에 엎드렸다.
마핵의 박동이 느려졌다.
“개체가 상자 안에 들어갔다. 문을 닫아라.”
감독관의 말에 한결이 손을 들었다.
“잠깐만요. 먼저 먹이를 먹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운반 상자에 넣는 시험이지 건강 검진이 아니다.”
“둘은 분리할 수 없습니다.”
가시여우는 천 위에 엎드린 채였다. 상자 벽을 긁지도 않았고 출구를 찾느라 몸부림치지도 않았다.
붉은 갈색 머리의 여학생이 조용히 말했다.
“호흡도 내려갔어. 처음보다 확실히 안정됐고.”
“확인해 줘서 고맙습니다.”
“리아 벨로트야. 네 방식은 꽤 느리네.”
“그래도 지금은 안전합니다.”
은발 남자가 상자 옆에서 돌아섰다.
“검을 쓰지 않아도 통제할 수 있다는 뜻입니까?”
“통제한 게 아닙니다. 들어갈 길을 막지 않았을 뿐입니다.”
“위험생물에게 선택지를 주는 것이 항상 가능한 건 아닙니다.”
“압니다. 그래서 먼저 사람 다칠 길을 막았습니다.”
한결은 빈 기록지를 받아 들었다. 공명 청진을 오래 사용한 탓에 귀 뒤쪽이 욱신거렸다. 그는 손끝의 떨림을 참으며 기록 칸을 채웠다.
감독관이 적은 ‘공격성 높음’ 아래에 새로운 줄을 만들었다.
‘외부 소음과 강한 조명에 반응해 출구 탐색. 사료에서 씁쓸한 금속성 냄새 확인. 자극 제거 후 호흡 완화. 먹이 냄새와 흙냄새를 따라 열린 상자에 자발 진입. 완전한 진정 아님.’
“그건 평가가 아니라 관찰 일지다.”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실기장 입구에 백금발 여자가 서 있었다. 낮게 묶은 머리와 단안경 너머의 눈이 기록지를 훑었다. 옷깃에는 마수생태학 교수의 은색 표식이 달려 있었다.
감독관이 허리를 굽혔다.
“모르트 교수님.”
“왜 ‘폭주’를 쓰지 않았지?”
“폭주라고 쓰면 원인이 사라집니다.”
“원인을 아나?”
“모릅니다. 다만 소음과 빛과 냄새를 줄였을 때 호흡이 내려갔습니다. 공격하려는 개체라면 먹이를 앞에 두고도 등을 보이지 않았을 겁니다.”
“공명 청진인가?”
한결의 손이 기록지 위에서 멈췄다.
“호흡과 자세를 봤습니다.”
“질문에 답하지 않았군.”
한결은 입을 다물었다. 공명 청진을 설명하면 사람들은 마수의 속을 훔쳐보는 아이를 경계했다. 변경 보호소에서도 그는 손님들 앞에서 그 능력을 쓰지 않았다.
셀레나 모르트는 더 캐묻지 않고 상자 안을 보았다. 가시여우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한결의 움직임에 귀를 세우고 있었다.
“완전히 진정된 게 아니다.”
“네.”
“그런데도 성공이라고 생각하나?”
“오늘 시험은 운반 상자에 넣는 것입니다. 들어갔습니다. 다음에는 상자 안에서 안전하게 이동하는 방법을 확인해야 합니다.”
셀레나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정답을 말하지 않는군.”
“모르는 건 모른다고 적는 게 기록입니다.”
실기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감독관은 마지못해 상자 문을 반쯤 닫았다. 리아는 약초 주머니를 묶었고 은발 남자는 통로에 남은 지원자들을 바깥으로 내보냈다.
셀레나는 한결에게 빈 기록지 한 장을 내밀었다.
“제7사육장이라는 곳을 알고 있나?”
“아니요.”
“폐쇄 직전인 위험생물 실습 시설이다. 공식 등급 밖 개체와 회복 중인 개체가 남아 있지.”
“학생이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까?”
“대부분은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저는 들어가 보고 싶습니다.”
대답이 너무 빨리 나왔다.
“왜?”
“기록할 개체가 있을 테니까요.”
“살릴 수 있다는 말은 하지 않나?”
“살릴 수 있는지는 봐야 압니다.”
셀레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낡은 열쇠 하나를 기록지 위에 올려놓았다.
“그럼 보고 와라. 아직 네 배치는 확정하지 않았다. 네가 저 열쇠를 들고도 개체보다 사람을 먼저 위험에 빠뜨리는지 확인하겠다.”
열쇠 끝이 한결의 손바닥을 눌렀다. 금속에서 오래된 습기와 짐승 냄새가 희미하게 올라왔다.
“내일 아침 제7사육장 앞에서 기다려라. 첫 기록 대상은 네가 고른다. 단 한 번의 성공으로 아무것도 증명되지 않는다.”
입학 실기의 점수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한결은 벌써 다음 우리 앞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상자 안의 가시여우가 몸을 뒤척였다. 문틈 사이로 코끝을 내밀었지만 한결에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한결은 그 거리를 그대로 두었다.
“내일 뵙겠습니다.”
셀레나는 대답 대신 한결의 기록지 맨 아래에 작은 글씨로 한 줄을 덧붙였다.
‘명령하지 않고 환경을 바꾼다. 제7사육장 관찰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