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로 귀환한 절대마법사

11화: 사라진 기록들
가람동 214-7번지는 신도시의 유리 건물들에서 한참 떨어진 재개발 구역 끝에 있었다.
낮은 담장 너머로 철거를 기다리는 다세대 주택들이 늘어서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골목에는 비에 젖은 전단지와 깨진 플라스틱 의자가 굴러다녔다.
그 한가운데에만 새로 칠한 회색 건물이 서 있었다. 현관 위의 작은 간판에는 ‘아레스 보호 임시 조합 관리 사무소’라고 적혀 있었다.
진우는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주민 기록을 보관한다는 곳치고는 출입문 양쪽에 선 사내들의 눈빛이 지나치게 날카로웠다. 투명한 귀걸이형 통신기와 검은 정장 아래의 방호 조끼도 평범한 사무 직원의 차림은 아니었다.
“여기가 맞아요.”
스마트폰을 든 민아가 낮게 말했다.
“길드 쪽에서 확인해 봤는데 이 주소로 이관된 기록이 꽤 많아요. 그런데 열람 신청을 넣은 사람들은 대부분 답을 못 받았대요.”
“그럼 오늘은 답을 받게 하면 된다.”
진우는 담담히 문을 밀었다.
안쪽은 예상보다 조용했다. 접수 창구 뒤에는 서류 상자가 천장까지 쌓여 있었지만 기다리는 민원인은 한 명도 없었다. 벽에 붙은 전광판은 꺼져 있었고 복도 끝의 철문에는 카드 인식기가 두 겹으로 달려 있었다.
벽에는 ‘대격변 피해 이주민 상담’이라는 낡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상담실 문에는 번호표도 없었고 의자 위에는 먼지만 얇게 내려앉아 있었다. 사람을 돕기 위한 장소라기보다 사람의 이름을 가려 두기 위한 창고에 가까웠다.
진우는 출입문 옆에 놓인 방문자 대장을 힐끗 보았다. 오늘 날짜 아래에는 자신과 민아의 이름보다 먼저 검은 펜으로 지워진 줄이 세 개 있었다. 누군가 그들의 방문을 예상하고 자리를 비운 흔적처럼 보였다.
창구의 중년 여자가 진우와 민아를 훑어보았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진우는 가족관계 증빙 화면과 공공 포털의 열람 제한 문구를 차례로 내밀었다.
“강성태와 이혜숙의 실종 기록을 열람하러 왔다. 어제 이곳으로 이관됐다는 안내를 받았다.”
여자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특수 관리 대상은 상급 길드 승인 없이는 열람할 수 없습니다. 온라인으로 신청해 주십시오.”
“온라인에서 이곳으로 오라고 했다.”
“그래도 절차가 있습니다.”
진우의 시선이 창구 뒤쪽으로 향했다. 정리되지 않은 서류 상자 사이에 오래된 종이 특유의 마른 냄새가 배어 있었다. 그 속에 섞인 잉크와 봉인 밀랍의 잔향은 보통 기록 보관소와 달랐다.
누군가 급히 지우고 옮긴 서류에서만 남는 흐트러진 결이었다.
민아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방금 협회 민원 창구에 유가족 기록 대조 열람을 접수했어요. 접수 번호도 받았습니다. 민간 위탁 기관은 원본 보유 여부와 이관 대장 존재 여부를 답변해야 한다고요.”
여자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녀가 단말을 확인하는 동안 복도 끝 철문 너머에서 낮은 발소리가 멈췄다.
“대장 자체는 확인 절차가 필요합니다.”
“확인해라.”
진우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물러설 틈이 없었다.
십여 분 뒤 여자는 작은 열람실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열람실의 유리벽 바깥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 둘이 서 있었다. 그들은 고개를 숙인 채 휴대 단말을 만지작거렸지만 시선은 계속 진우에게 꽂혀 있었다.
여자는 탁자 위에 얇은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전산 기록만 열람 가능합니다. 원본 대장은 보존실 자료라 반출이 어렵습니다.”
화면에는 강성태와 이혜숙의 이름이 떴다.
대격변 당일. 가람동 3구역. 실종.
그 아래에는 단 한 줄이 더 있었다.
‘상태: 미상 종결.’
진우는 화면을 오래 바라봤다. 글자는 짧았지만 그 두 글자 사이에 지워진 시간이 보였다. 부모님이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확인하지 않은 기록이었다.
“이게 전부인가?”
“전산상으로는 그렇습니다.”
“이관 대장의 번호는 47-19다. 공공 포털에는 분명히 적혀 있었다.”
여자의 얼굴이 굳었다.
“그 번호는 오래된 내부 분류입니다. 지금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관련이 없다면 숨길 이유도 없겠군.”
진우는 손가락으로 태블릿 화면의 이관 항목을 짚었다. 화면 한쪽에는 미세하게 끊긴 수정 이력 표시가 남아 있었다. 삭제된 기록을 덮을 때 생기는 빈칸이었다.
민아도 그것을 발견했다.
“수정 이력 보존 기간이 끝난 자료라고 뜨는데요. 그런데 이력 번호가 비어 있어요. 삭제 처리라면 담당자와 사유가 남아야 해요.”
여자가 태블릿을 낚아채려 했다.
그 순간 진우는 열람실 문 너머에서 느껴지는 종이의 잔향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반쯤 열린 보존실 문 안쪽 선반에 낡은 대장 한 권이 비스듬히 꽂혀 있었다.
등표지에는 희미하게 ‘47-19’가 적혀 있었다.
“저것을 보여 줘라.”
“그건 열람 대상이 아닙니다.”
“내 가족의 기록이 든 대장이다.”
여자가 대답하지 못하자 민아가 협회 민원 번호를 다시 읽었다.
“원본 대조 거부 사유까지 접수할까요?”
잠시 뒤 여자는 이를 악문 채 보존실로 들어갔다. 그녀가 대장을 들고 나왔을 때 진우는 가장자리의 먼지가 최근에 닦였다는 것을 알아챘다.
대장은 낡았지만 마지막 장들만 유난히 새 종이처럼 깨끗했다. 누군가 손을 댄 흔적이었다.
여자는 대장을 탁자 위에 올리고 필요한 쪽만 펼쳤다.
강성태. 이혜숙.
진우의 손끝이 멈췄다.
두 이름 옆에는 전산에 없던 두 번째 줄이 남아 있었다.
‘보호 이송. 생존 확인.’
날짜는 대격변 이틀 뒤였다.
진우는 숨을 들이마셨다. 백 년 동안 억지로 눌러 두었던 희망이 가슴을 세게 찔렀다. 부모님은 적어도 그날 바로 죽지 않았다.
강성태는 위기 앞에서 언제나 먼저 수치를 확인하던 사람이었다. 이혜숙은 겁먹은 진우의 손을 잡고 괜찮다고 말해 주던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낯선 재난 속에서도 살아 있었다는 두 글자는 오래전에 굳어 버린 기억에 작은 숨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 머물지 못했다. 생존을 확인한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면 그 기록은 희망이 아니라 누군가가 쥔 인질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칸은 칼로 도려낸 듯 깨끗하게 찢겨 있었다.
여자가 황급히 대장을 덮었다.
“보셨으면 됐습니다. 이후 내용은 보안 대상입니다.”
“누가 찢었지?”
“기록 보존 과정에서 훼손된 겁니다.”
“종이는 오래됐지만 찢긴 자리는 새롭다.”
진우가 대장의 가장자리를 바라봤다. 찢긴 섬유는 아직 누렇게 바래지 않았고 압인된 도장의 붉은 안료도 가장자리에 선명했다.
복도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검은 정장 사내들이 열람실 문 앞에 섰다.
“열람 시간은 끝났습니다.”
낯선 사내가 말했다.
“대장을 넘기십시오.”
진우는 대장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손상된 코어가 안쪽에서 가늘게 아려 왔다. 이 정도의 흔적을 읽는 데에도 마력이 필요했다.
그는 고통을 무시하고 엄지손가락을 종이 가장자리에 살짝 댔다.
1서클 응용 마법, 흔적 읽기.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느다란 마력 실이 종이 섬유 사이를 훑었다. 눌려 있던 글씨의 자국이 진우의 감각 속에서 잠깐 떠올랐다.
제3임시보호시설.
에테르 우선 이송.
승인자 서도현.
그 뒤의 주소는 종이와 함께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진우의 관자놀이를 식은땀이 타고 흘렀다. 코어가 무너지는 듯 쑤셨지만 그는 손끝을 떼기 전까지 호흡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민아 씨. 내가 말하는 대로 적어라.”
민아는 상황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메모 화면을 열었다.
“제3임시보호시설. 에테르 우선 이송. 승인자는 서도현이다.”
검은 정장 사내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 내용을 어디서 봤습니까?”
“당신들이 보여 준 대장에서.”
진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가족의 기록을 찢어 놓고도 그 질문을 할 자격이 있나.”
사내가 한 걸음 다가왔으나 민아가 먼저 협회 민원 화면을 켰다.
“지금 이 자리에서 유가족 열람을 방해하면 전부 기록으로 남아요. 대장 훼손도 함께 신고할 겁니다.”
사내는 움직임을 멈췄다. 유리벽 바깥 복도에는 민원 접수를 위해 들어온 노부부가 서 있었다. 이곳에서 억지로 사람을 끌고 갈 만큼 조용한 장소는 아니었다.
“나가시죠.”
진우는 대장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마지막까지 찢긴 칸에 머물렀다.
사무실 밖으로 나온 뒤 민아가 숨을 몰아쉬었다.
“서도현이요? 그 단속반장이 왜 스무 해 전 이송 승인자에…….”
“이름이 같을 수도 있다.”
진우는 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 확인해야 한다.”
그는 스마트폰 메모에 남은 짧은 문구를 내려다봤다.
부모님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승인 아래 어딘가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흔적을 지운 자들은 지금도 그 기록을 지키고 있었다.
손상된 코어의 통증은 아직 가라앉지 않았지만 진우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어둠 속을 더듬는 것이 아니었다. 짧고 불완전해도 분명히 이어진 흔적이 그의 손안에 남아 있었다.
사무실 유리문이 등 뒤에서 닫혔다.
진우는 돌아보지 않았다. 다만 건물 2층 창가에 선 검은 그림자가 스마트폰을 귀에 댄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느꼈다.